
스트리밍 경쟁이 치열해진 환경에서 워너 브라더스 디스커버리(WBD)가 가진 ‘콘텐츠 자산의 조합’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궁금하실 겁니다. 핵심은 한 가지입니다. WBD는 HBO라는 프리미엄 제작 역량, DC라는 대형 프랜차이즈 IP, 스포츠라는 라이브 락인 콘텐츠를 동시에 쥐고 있습니다. 마치 한 손에는 정교한 셰프의 칼, 다른 손에는 대형 프라이팬, 그리고 냉장고에는 인기 재료가 가득한 셈이지요. 문제는 재료가 많다고 해서 자동으로 맛있는 요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오늘은 세 축(HBO·DC·스포츠)을 각각 ‘돈이 되는 방식’과 ‘돈이 새는 지점’으로 나누어 살펴보며, 투자자 관점에서 무엇을 체크해야 하는지도 자연스럽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HBO: ‘적게 만들어도 오래 남는’ 프리미엄의 가격표
HBO의 힘은 화려한 숫자보다 “기억에 남는 한 편”에서 나옵니다. 사람들은 바쁜 와중에도 누군가가 강하게 추천한 작품이라면 시간을 내서 보곤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한 한 편이 취향에 맞으면, 구독은 습관처럼 이어집니다. 이 지점에서 HBO는 WBD의 엔진 역할을 합니다. 다만 프리미엄은 늘 비싸게 굴러갑니다. 제작비가 높고, 제작 기간이 길며, 히트가 나기 전까지는 비용이 먼저 빠져나갑니다. 그래서 HBO 전략은 “많이 뿌리고 건지는” 방식과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이 작품이 실패하면 무엇으로 버티지?’라는 불안이 더 크게 따라붙습니다. 라인업이 비는 달이 생기면 구독자 이탈이 늘고, 이를 막기 위해 마케팅 비용을 올리면 수익성이 다시 눌립니다. 또 하나의 고민은 플랫폼 통합 이후의 인상 관리입니다. 프리미엄이라는 명함은 쉽게 주워 담을 수 있지만, 한번 구겨지면 펴기 어렵습니다. HBO가 가진 엄격한 편집 감각이 흔들리면 “HBO라서 믿고 본다”는 반사구매가 약해집니다. 그러면 WBD는 비싸게 만든 작품을 더 비싸게 팔아야 하는 곤란한 상황에 빠질 수 있습니다. 저는 한동안 드라마를 거의 못 보다가, 주변에서 강하게 추천한 HBO 작품 하나를 보기 위해 구독을 시작했습니다. 첫 회부터 몰입이 되니 ‘이번 달은 유지해야겠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그런데 그 작품이 끝난 뒤, 다음 달에는 비슷한 결의 신작이 눈에 띄지 않습니다. 그때 저는 결제를 갱신할지 망설이고, “다음 달에 다시 구독하지 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게 바로 프리미엄 편성의 무서운 지점입니다. 투자자 관점에서는 구독자 수 자체보다, 좋은 작품이 끊기지 않게 이어지는지(편성 밀도), 그리고 그 비용이 통제되고 있는지(콘텐츠 지출 대비 유지·광고 성과)를 함께 보셔야 합니다.
DC: 거대한 세계관은 ‘설계도’가 아니라 ‘공사 일정’으로 평가해야 합니다
DC는 한 번만 잘 풀리면 폭발력이 큽니다. 영화관 매출뿐 아니라, 스트리밍 유입과 스핀오프 제작, 게임·굿즈·라이선스까지 연쇄로 돈길이 열립니다. 특히 프랜차이즈는 단발 히트가 아니라 ‘연속 시청의 습관’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스트리밍 시대에 더 가치가 커집니다. 한 작품을 본 사람이 “그럼 이 캐릭터가 나온 이전 이야기도 볼까?” 하고 플랫폼 안에서 계속 이동하면, 그 자체가 체류 시간과 이탈 방지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DC는 “크기만큼 흔들림도 큰 자산”입니다. 세계관을 다시 짜는 과정에서 방향이 조금만 흔들려도 관객의 신뢰가 빠르게 식습니다. 게다가 슈퍼히어로 장르에 대한 피로감이 누적된 시장에서는, 익숙한 공식으로는 예전 같은 반응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DC는 ‘어떤 작품이 흥행했는가’보다 ‘세계관의 규칙이 일관되게 작동하는가’가 더 중요해집니다. 일관성이 없으면 다음 편의 기대가 줄고, 기대가 줄면 마케팅 비용이 늘고, 비용이 늘면 수익이 줄어드는 식으로 악순환이 시작됩니다. 여기서 투자자가 확인해야 할 것은 “설계도”가 아니라 “공사 일정”입니다. 즉, 작품 간 간격이 너무 벌어지지 않는지, 주요 캐릭터의 톤이 갑자기 바뀌지 않는지, 극장 개봉과 스트리밍 확장이 따로 노는지 등을 보는 편이 현실적입니다. DC는 한 방이 크지만, 한 번의 삐끗 이 여러 프로젝트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DC 영화 한 편을 재미있게 보고 나서, 집에 돌아와 “관련 작품이 더 있나?” 하는 마음으로 플랫폼을 켰습니다. 그런데 연결되는 작품의 분위기와 설정이 제 기대와 너무 다르니 흥미가 뚝 떨어졌습니다. 이때 저였다면 그 캐릭터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기보다는, 그냥 다른 플랫폼으로 이동해 버렸을 겁니다. 반대로 연결이 자연스럽고, 다음 작품의 예고가 명확하면 저는 “다음 편 나올 때까지는 구독을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겁니다. 이 차이가 DC의 수익화에서 결정적입니다. 결국 DC는 ‘IP 보유’가 아니라 ‘운영 능력’이 가치의 대부분을 좌우합니다.
스포츠: 사람을 붙잡는 가장 빠른 방법, 그러나 지갑은 가장 무겁습니다
스포츠는 스트리밍의 약점을 정면으로 찌르는 카드입니다. 영화나 드라마는 “나중에 몰아보지”가 가능하지만, 스포츠는 지금 안 보면 대화에서 소외되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실시간이라는 성격 덕분에 시청이 습관이 되고, 습관은 해지를 늦춥니다. 광고 관점에서도 멈춤 없는 라이브 시청은 매력적입니다. 그래서 스포츠는 구독 유지와 광고 매출을 함께 노릴 수 있는 ‘앵커 콘텐츠’로 자주 거론됩니다. WBD가 스포츠를 포트폴리오의 한 축으로 들고 있는 이유도 결국 여기에 닿아 있습니다. 다만 스포츠는 가장 무거운 비용을 동반합니다. 중계권은 경쟁 입찰로 가격이 빠르게 오르기 쉽고, 계약 기간이 길어지면 고정비가 단단히 박힙니다. 여기에 제작·중계 인프라 비용까지 붙으면, “좋은 콘텐츠를 확보했다”는 말이 곧 “장기 지출을 확정했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더 조심해야 하는 것은, 스포츠가 구독자 유지에는 도움이 되더라도 그 유지 효과가 비용 증가를 상쇄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광고 경기가 둔화되면, 스포츠가 기대했던 광고 프리미엄이 생각만큼 따라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투자자 관점에서는 스포츠를 ‘있으면 든든한 장식’으로 보시면 곤란합니다. 중계권 비용의 상승률, 번들 전략과 광고 상품의 판매력, 그리고 스포츠 시청자가 실제로 플랫폼 전체 체류 시간과 이탈률 개선으로 이어지는지까지 연결해서 보셔야 합니다. 라이브 콘텐츠는 강하지만, 강한 만큼 계산이 빡빡해야 합니다. 저는 주말마다 EPL 경기만 챙겨봤습니다. 경기가 있는 달에는 구독을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시즌이 끝나면 제 관심은 급격히 식고, 결제를 끊을 유혹이 커졌습니다. 이때 플랫폼이 하이라이트·분석·다큐 같은 후속 콘텐츠로 저를 잡아두면 유지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저는 미련 없이 해지했습니다. 결국 스포츠는 “시즌 중에는 강력, 시즌 밖에서는 약해질 수 있는” 속성을 갖습니다. 그래서 스포츠만으로는 부족하고, HBO·DC 같은 다른 축과의 맞물림이 있어야 비용 부담을 덜 수 있습니다.
WBD의 강점은 분명합니다. HBO는 품질로 시간을 사로잡고, DC는 세계관으로 반복 소비를 만들 수 있으며, 스포츠는 라이브로 이탈을 늦춥니다. 다만 세 축 모두 비용이 높고, 운영이 삐끗하면 손실도 빠르게 커질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투자자라면 단순히 “히트작이 나왔다”에 머무르기보다, 히트가 구독 유지·광고·라이선스 확장으로 얼마나 연결되는지, 그리고 비용이 그 속도를 따라가며 커지고 있지는 않은지를 보셔야 합니다. 콘텐츠는 화려하지만, 회사의 체력은 숫자에서 드러납니다. HBO의 편성 밀도, DC의 일관된 세계관 실행, 스포츠의 수익화 설계가 동시에 맞아떨어질 때 WBD의 포트폴리오는 ‘강점’으로 남습니다. 반대로 하나라도 과속하면, 강점은 곧 리스크가 될 수 있습니다. 이 균형 감각을 기준으로 WBD를 바라보시면 판단이 한결 또렷해지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