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반도체 기업 텍사스 인스트루먼츠(TI, TXN)에 관심은 있지만, “AI처럼 폭발적인 성장 스토리가 없는데 왜들 좋다고 할까?”가 궁금한 분들이 있을 겁니다. 아날로그 반도체가 가진 생활밀착형 수요, 그리고 미국 중심의 제조·공급망이 주는 안정감. 그리고 배당까지 더해지면, 포트폴리오에서 ‘속도를 내는 차’가 아니라 ‘흔들림을 잡아주는 서스펜션’ 같은 역할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글은 투자 권유가 아니라, 판단을 돕는 관점 정리입니다.
아날로그는 화려하지 않아서 더 강합니다. (아날로그)
아날로그 반도체의 매력은 한마디로 “눈에 안 띄는데 늘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고성능 GPU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않지만, 전원관리와 신호 처리 같은 영역은 전자제품이 존재하는 한 빠져나갈 구멍이 거의 없습니다. 현실 세계의 전기는 완벽한 직선이 아니라 늘 흔들리는데, 아날로그 칩은 그 흔들림을 다듬어 기기가 제 역할을 하게 만들어 줍니다. 마치 소음이 섞인 목소리를 통역 가능한 문장으로 정리해 주는 번역기 같다고 느껴지실 겁니다. 그리고 아날로그의 또 다른 힘은 ‘수명’입니다. 산업 장비나 자동차는 한 번 설계에 들어가면 쉽게 바꾸지 않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 제품이 오랜 기간 반복 판매되는 경우가 많아, 매출이 한두 개 히트작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습니다. 이런 구조는 경기 변동의 충격을 완전히 없애진 못해도, 충격을 “곳곳으로 분산”시키는 데 도움이 됩니다. 제가 ‘기술주가 늘 긴장되는 사람’이라는 설정으로 포트폴리오를 점검하던 때가 있습니다. 한쪽엔 기대감으로 오르는 종목이 있었지만, 실적 한 번 미끄러지면 마음이 같이 흔들리더군요. 그래서 “매일 주가를 쳐다보지 않아도 되는 기업이 필요하다”는 기준을 세웠고, 그때 눈에 들어온 게 아날로그 기업들이었습니다. 제품이 바뀌지 않는 시장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제 성향에는 꽤 큰 위로였지요. 아날로그의 강점은 결국 ‘기술의 속도’가 아니라 ‘필요의 지속성’에서 나옵니다.
미국 중심 공급망은 ‘보험’이 아니라 ‘습관’입니다(공급망)
TI를 볼 때 공급망 이야기를 빼면, 장점의 절반을 놓치기 쉽습니다. 반도체는 만들기만 하면 끝이 아니라, “언제, 어디에, 얼마나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지가 실적을 바꿉니다. 특히 산업·자동차 고객은 납기 하나가 생산 라인 전체를 멈출 수도 있어, 가격만큼이나 신뢰를 봅니다. 그래서 미국 내 생산 기반을 넓히고 공정 운용을 장기적으로 설계하는 전략은, 단순히 애국 소비 같은 정서가 아니라 ‘리스크 관리’이자 ‘거래 지속성’과 맞닿아 있습니다. 다만 공급망 강화는 마냥 달콤하지만은 않습니다. 설비투자가 늘면 감가상각 부담이 커지고, 수요가 꺾이는 구간에는 가동률이 떨어지며 마진이 눌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공급망을 장점으로만 말하면 현실이 비어 보입니다. 중요한 건 “불황을 버티기 위한 비용을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느냐”입니다. 즉, 공급망은 이벤트성 한 방이 아니라, 꾸준히 다듬는 생활 습관에 가깝습니다. 제가 예전에 전자부품을 소량 구매해 라디오를 만들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급하게 필요한 부품이 있어 주문했는데, 배송 지연으로 일정이 꼬인 경험이 생기면, 다음부터는 가격이 조금 비싸도 “제때 오는 곳”을 찾게 되더군요. 기업 고객은 그 마음이 훨씬 더 절박할 겁니다. TI가 공급 안정성을 무기로 신뢰를 쌓는다면, 단기 가격 경쟁 이상의 관계를 만들 수 있고, 이것이 경기 변동기에도 버티는 힘으로 연결될 여지가 있습니다.
배당주로서 TXN은 ‘현금의 결’이 중요합니다(배당)
배당을 볼 때 가장 흔한 실수는 배당수익률만 보고 마음이 급해지는 겁니다. 숫자가 높아 보이면 든든하지만, 그 배당이 어디서 나오는지 확인하지 않으면 오래 못 갑니다. 배당의 근원은 결국 현금흐름이고, 그중에서도 잉여현금흐름(FCF)이 핵심입니다. TI 같은 기업을 배당 관점에서 보려면 “현금이 들어오는 리듬이 얼마나 일정한가”, 그리고 “설비투자 같은 큰 지출이 있어도 배당을 감당할 체력이 있는가”를 함께 봐야 합니다. 여기서 아날로그 기업 특유의 장점이 살아납니다. 제품 수명이 길고 고객이 분산될수록, 현금의 흐름이 한쪽으로 쏠릴 위험이 줄어듭니다. 물론 사이클은 존재합니다. 재고 조정이 길어지면 매출이 꺾이고, 그 여파가 현금흐름에도 번집니다. 그래서 배당주는 더더욱 ‘좋을 때의 수치’가 아니라 ‘나쁠 때의 방어력’을 체크해야 합니다. 제가 배당주를 고를 때 쓰는 규칙을 말씀드리면, “배당을 받는 기쁨이 주가 하락의 스트레스를 이길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먼저 던집니다. 그리고 배당이 흔들릴 수 있는 조건(현금흐름 둔화, 투자 확대, 금리 환경 변화)을 종이에 적어 둡니다. 이 과정을 한 번이라도 해보면, 배당이 ‘선물’이 아니라 ‘계약’처럼 느껴집니다. TI를 배당 관점에서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배당 자체보다, 그 배당을 지탱하는 현금의 결이 매끄러운지 확인하는 태도가 결국 성과를 가릅니다.
TI는 “빠르게 커지는 이야기”보다 “오래 버티는 구조”로 이해하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아날로그는 생활 속 전기를 다듬는 필수품에 가깝고, 미국 중심의 공급망은 납기 신뢰라는 보이지 않는 경쟁력을 만들 수 있습니다. 배당은 그 위에 얹히는 보상일 뿐, 핵심은 현금흐름과 투자 부담을 함께 보는 균형감입니다. 오늘은 TI를 한 번 ‘성장주’가 아니라 ‘방어형 반도체’라는 프레임으로 점검해 보시고, 본인 포트폴리오에서 어떤 역할을 맡길지 기준을 세워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