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날로그 디바이시스(Analog Devices, ADI)를 “아날로그 반도체 대표주” 정도로만 알고 계신 투자자분들이 있습니다. 전기차와 공장 자동화, 그리고 전력 효율화 흐름이 커질수록 ADI 같은 혼합신호 기업의 존재감이 은근히 커지는데요. 다만 이런 기업은 유행어보다 숫자와 현장의 리듬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화려한 전망을 나열하기보다, 투자자가 실제로 체크해야 할 포인트를 세 갈래로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목적은 단순합니다. “좋은 회사”인지보다, “지금 어떤 국면인지”를 이해하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돕는 것입니다.
전기차: 판매량보다 ‘차 한 대에 들어가는 정밀도’가 투자 포인트입니다
전기차 이야기를 하면 보통 배터리 원가, 완성차 판매량, 충전 인프라 같은 굵직한 뉴스가 먼저 떠오릅니다. 그런데 ADI를 볼 때는 시선을 조금 더 안쪽으로 옮기셔야 합니다. 전기차는 전기가 흐르는 방식 자체가 복잡해졌고, 그래서 ‘측정’과 ‘보정’의 중요도가 내연기관 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습니다. 배터리관리시스템(BMS)만 보더라도 셀 전압과 온도, 전류를 일정한 기준으로 읽어내야 안전과 수명, 주행거리 예측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때 아날로그·혼합신호 부품은 단순 부속품이 아니라, 전기차의 신뢰도를 지탱하는 기둥에 가깝습니다. 투자자 관점에서 유용한 질문은 “전기차가 몇 대 팔리나”보다 “차 한 대당 아날로그 콘텐츠가 얼마나 늘어나나”입니다. 소프트웨어가 아무리 똑똑해도 입력 신호가 흔들리면 결과가 왜곡됩니다. 그러니 고전압 환경에서 노이즈를 견디고, 열과 진동을 버티면서도 정밀도를 유지하는 부품의 가치는 시간이 갈수록 올라갑니다. ADI는 이 ‘정확함을 오래 유지하는’ 구간에서 브랜드 신뢰를 쌓아왔고, 그 신뢰는 설계 채택(디자인-인)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번 차량 플랫폼에 들어가면 인증과 검증 비용 때문에 쉽게 바꾸기 어렵다는 점도, 장기 투자자에게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여기서 분기 실적을 볼 때는 자동차 매출의 성장률만 보지 마시고, 자동차향 매출의 성격을 같이 보시는 편이 좋습니다. 예컨대 특정 티어 1과의 플랫폼 확장, 세대교체(신규 플랫폼)에서의 채택 증가, 고부가 라인업 비중 같은 항목이 실제 체력을 보여줍니다. “좋다”는 말보다 “어떤 제품군이 늘었나”가 더 솔직하거든요. 제가 예전에 전기차 부품 관련 자료를 정리할 때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전기차 판매량’ 그래프만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부품업체 엔지니어 인터뷰를 읽다가 문장이 한 줄 걸렸습니다. “주행거리 경쟁은 결국 손실을 얼마나 줄이느냐 싸움이고, 손실은 측정과 제어에서 새어 나간다.” 그 뒤로는 자료를 볼 때 ‘출하량’ 옆에 ‘차량당 콘텐츠 증가’라는 메모를 꼭 붙였습니다. 판매량이 잠시 주춤해도, 고전압 전장화가 깊어지면 정밀 센싱과 전원관리 부품의 단가와 비중이 올라갈 수 있다는 관점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ADI 같은 기업은 바로 그 지점에서 투자 논리가 만들어집니다.
자동화: 공장 투자는 느리게 움직이지만, 한 번 움직이면 길게 갑니다
공장 자동화는 전기차보다 더 “현장 중심”입니다. 멋진 데모 영상보다, 공장 바닥에서 버티는지 여부가 승부를 가릅니다. 온도 변화, 전기적 노이즈, 24시간 연속 가동, 그리고 예기치 못한 정지 비용까지. 이런 조건에서는 부품 하나가 불량을 내면 손실이 단가의 수천 배로 튀기도 합니다. 그래서 산업용 아날로그 반도체는 가격 경쟁만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고장 나지 않는 정확함’이 곧 비용 절감이기 때문입니다. 투자자 입장에서 자동화는 두 겹으로 보셔야 합니다. 바깥 겹은 설비투자 사이클입니다. 경기가 불안하면 공장 증설과 교체가 미뤄지고, 주문과 출하가 먼저 식습니다. 안쪽 겹은 구조적 변화입니다. 스마트팩토리, 예지정비, 로봇·서보 제어, 산업용 네트워크가 확산되면 센서와 신호 처리, 절연 인터페이스, 정밀 변환(ADC/DAC) 같은 부품이 늘어납니다. 즉, 단기적으로는 흔들리더라도, 장기적으로는 ‘공장이 더 많이 측정하고 더 촘촘히 제어하는 방향’으로 가는 셈입니다. ADI는 바로 이 안쪽 겹에서 강점을 갖습니다. 실적을 읽는 실전 팁도 하나 드리겠습니다. 자동화 구간에서는 매출 성장률보다 재고와 리드타임, 그리고 고객의 소진 속도(디스톡킹)를 함께 보시는 게 안전합니다. 산업 고객은 한 번 재고를 쌓았다가 조정하기 시작하면, 주문이 생각보다 빠르게 줄어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대로 재고가 정상화되면 회복도 종종 급합니다. 그래서 “좋은 기업인데 왜 주가가 못 가나”라는 감정이 들 때, 그 이유가 기업 자체가 아니라 사이클의 파도일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파도를 탓할지, 파도 위에서 균형을 잡을지 판단하는 쪽이 투자자의 몫입니다. 제가 예전에 산업 자동화 관련 종목들을 공부했을 때, ‘스마트팩토리’라는 단어가 너무 그럴듯해서 마음이 먼저 달아올랐습니다. 그런데 분기 보고서를 펼치니 숫자는 생각보다 심드렁했습니다. 그때 저는 체크리스트를 바꿨습니다. 매출보다 먼저 “주문 흐름이 어떻게 변했는지”, “유통 채널 재고가 늘었는지 줄었는지”, “리드타임이 정상으로 돌아오는지”를 적기 시작했지요. 그 후로는 자동화 기업을 볼 때 감정이 덜 흔들렸습니다. ‘좋은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 공장이 무엇을 미루고 무엇을 다시 시작하는지’가 숫자에 먼저 찍힌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ADI도 자동화 비중이 있는 만큼, 이 프레임으로 보면 훨씬 차분하게 판단하실 수 있습니다.
전력반도체: 소자보다 ‘전력을 다루는 뇌’에 주목하셔야 합니다
전력반도체라는 말이 나오면 시장은 종종 SiC, GaN 같은 전력 소자에 시선이 쏠립니다. 물론 소자도 중요합니다. 다만 ADI를 투자 대상으로 놓고 보면, 핵심은 소자를 “어떻게 안전하게 굴리고, 어떻게 효율을 끌어올리느냐”에 더 가깝습니다. 전력 변환 시스템은 크게 보면 물길을 바꾸는 수문과 같습니다. 물(전력)을 많이 흘려보내려면 수문(소자)도 튼튼해야 하지만, 수위를 읽고(센싱) 수문을 미세하게 조절하는 장치(제어)가 없으면 홍수가 나거나 손실이 커집니다. ADI는 그 ‘읽고 조절하는 장치’에서 존재감을 키워온 기업입니다. 투자 포인트는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전력 효율이 중요해질수록 측정 정확도와 절연, 신호 무결성 같은 영역의 단가가 올라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둘째, 전력·에너지 시장은 프로젝트 기반이 많아 매출 인식이 울퉁불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분기 성장률에만 매달리면 마음이 쉽게 지칩니다. 셋째, 대신 한 번 설계에 들어가면 제품 수명이 길고 교체가 쉽지 않아, 시간이 지날수록 누적 효과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즉, “빨리 크게”보다는 “느리지만 단단하게”라는 성격이 비교적 강합니다. 그리고 전력 테마에서 자주 놓치는 포인트가 있습니다. 투자자들은 전력반도체를 이야기할 때 ‘전기차’나 ‘데이터센터’ 같은 수요처만 떠올리는데, 실제 현장에서는 규격, 인증, 안정성 요구가 문턱을 세웁니다. 이 문턱을 넘는 과정에서 고객은 단품보다 해결책을 선호하게 됩니다. 레퍼런스 디자인, 검증된 조합, 애플리케이션 지원이 중요해지는 이유입니다. ADI가 단순히 칩을 파는 회사라기보다, 고객의 설계 시간을 줄여주는 방식으로 관계를 넓히려는 흐름이 보인다면, 전력 효율화 테마가 ‘이야기’가 아니라 ‘매출의 습관’으로 바뀌고 있다고 볼 여지가 있습니다. 제가 에너지 저장장치(ESS) 관련 자료를 봤을 때, 처음에는 “시장 규모가 얼마나 크나”만 찾았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프로젝트가 지연되거나 인증이 길어지는 일이 잦다는 코멘트가 계속 등장하더군요. 그때부터는 관점을 바꿨습니다. ‘수요가 크다’는 말보다, “그 수요가 언제 매출로 찍히는가”, “고객이 검증된 설계를 얼마나 선호하는가”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숫자가 흔들릴 때도 기업이 고객의 설계 표준에 가까워지고 있다면, 그 흔들림이 단순한 후퇴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전력반도체 테마에서 ADI를 본다는 것은 결국 이 ‘설계 표준화의 누적’을 읽는 일과 닮아 있습니다.
ADI 투자는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더 많이 측정하고, 더 안전하게 제어하려는 시대의 수혜”를 읽는 일입니다. 전기차에서는 판매량보다 차량당 정밀 제어의 깊이를, 자동화에서는 테마보다 재고·리드타임·주문의 리듬을, 전력반도체에서는 소자보다 시스템 제어와 설계 채택의 누적을 보셔야 합니다. 그렇게 보면 ADI는 갑자기 뜨는 종목이라기보다, 시간이 흐를수록 손에 익는 도구에 가깝습니다. 오늘부터는 실적 발표를 볼 때도 “무엇이 늘었는지”와 함께 “왜 늘었는지”를 한 줄 메모로 남겨보세요. 그 작은 습관이 결국 투자 판단의 흔들림을 줄여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