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1월 20일 기준으로 머크(Merck, MRK)를 바라볼 때, 많은 분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질문은 “키트루다 다음은 무엇인가”일 겁니다. 그런데 그 답을 ‘하나의 신약 이름’에서만 찾으려 하면 오히려 시야가 좁아집니다. 저는 MRK를 볼 때 파이프라인을 시간표처럼 펼쳐 놓고, 임상 단계가 바뀌는 지점마다 리스크의 얼굴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먼저 봅니다. 마치 장거리 여행에서 목적지보다 환승 구간과 지연 가능성을 더 꼼꼼히 확인하듯이요. 이 글은 투자 권유가 아니라, 임상 단계별로 어떤 신호를 읽어야 하는지 정리해 두기 위한 점검 노트에 가깝습니다. 읽고 나면 “좋은 소식/나쁜 소식”의 제목에 흔들리기보다,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 점검하실 수 있게 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MRK: ‘임상 달력’으로 키트루다 이후를 읽는 방법
MRK의 키트루다 이후 전략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공백이 생기기 전에 여러 개의 후보가 서로 다른 속도로 결승선을 향해 달리게 만든다”에 가깝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여러 개’와 ‘속도’입니다. 회사가 무엇을 연 구하는 지보다, 그 연구가 지금 어디쯤 와 있고, 다음 분기·다음 해에 어떤 변곡점을 통과해야 하는지가 더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MRK를 볼 때 제품군을 세로로, 시간을 가로로 놓고 임상 달력을 그려 봅니다. 전 임상은 씨앗을 뿌리는 구간이라 풍성해 보이지만, 사실상 실패가 기본값입니다. 1상은 안전성이라는 문턱을 넘는 시험이고, 2상은 “효능이 ‘느낌’이 아니라 ‘패턴’으로 반복되는가”를 보는 자리입니다. 3상은 결과 그 자체도 크지만, 일정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굴러가느냐가 시장의 기대를 좌우합니다. 이렇게 달력으로 보면 키트루다 이후의 준비 수준도 다르게 보입니다. 후보가 많아도 1상에만 몰려 있다면 ‘미래’는 커 보이지만 ‘가시성’은 낮습니다. 반대로 후기 임상이 탄탄하면 매출 공백의 시간을 줄일 수 있지만, 그만큼 실패 비용도 커지고 일정 지연에 더 민감해집니다. 결국 MRK가 강한 지점은, 단일 후보에 올인하기보다는 병용·적응증 확장·외부 도입 같은 여러 길을 동시에 열어두는 데 있습니다. 다만 길이 많다는 건, 교통체증도 함께 늘어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어떤 길이 실제로 통과할 길인지, 즉 “임상 설계가 현실적이고 상업화까지 이어질 그림이 있는지”를 냉정하게 봐야 합니다. 예전에 제약주를 처음 공부할 때, 저는 발표자료의 ‘파이프라인 표’만 보고 마음이 들뜨곤 했습니다. 후보가 빼곡하면 왠지 안전해 보였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일정표를 직접 만들어 보니 전혀 다른 그림이 나왔습니다. 2상 결과 발표가 겹치는 분기가 지나치게 많아서, 하나만 삐끗해도 기대감이 한꺼번에 꺼질 수 있는 구조였던 겁니다. 그때부터 저는 “후보 수”가 아니라 “변곡점이 언제 어디에 몰려 있나”를 먼저 봅니다. MRK도 같은 방식으로 보면, 키트루다 이후가 ‘한 방’이 아니라 ‘시간 관리’의 싸움이라는 점이 훨씬 또렷해집니다.
파이프라인: 단계별로 읽어야 할 신호가 바뀝니다
파이프라인을 점검할 때 가장 흔한 실수는, 모든 임상 결과를 같은 눈금으로 재는 것입니다. 하지만 임상 단계마다 질문이 다르니, 답을 읽는 방식도 달라져야 합니다. 1상에서는 “안전한가”가 거의 전부입니다. 여기서 안전성은 단순히 부작용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용량을 올릴 수 있는 여지가 있는지, 장기 투여가 가능한지, 병용에서 감당할 독성이 늘어나지 않는지까지 포함합니다. 2상으로 가면 질문이 바뀝니다. 이제는 “효과가 보이느냐”가 아니라 “효과가 반복되느냐, 그리고 누구에게서 반복되느냐”가 중요해집니다. 같은 반응률이라도 특정 바이오마커나 환자군에서 일관된 패턴이 보이면 다음 단계로 갈 힘이 생깁니다. 반대로 전체 평균만 좋아 보이고 세부 분해가 되지 않으면, 3상에서 흔들릴 가능성이 커집니다. 3상은 더 냉정합니다. 통계적으로 유의하다는 문장 하나로 끝나지 않습니다. 경쟁 약이 많은 영역에서는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차이”가 있어야 처방이 바뀝니다. 의사가 선택을 바꾸려면, 생존·재발·부작용·투여 편의성 같은 현실의 축에서 설득이 되어야 하니까요. 그리고 이 구간에서는 결과 못지않게 ‘운영 리스크’가 커집니다. 환자 등록이 계획대로 되지 않거나, 중간 분석 시점이 변경되거나, 제조 스케일업 과정에서 시간이 늘어지는 일이 생기면 일정표가 찢어집니다. MRK처럼 규모가 큰 회사도 예외는 아닙니다. 규모는 버팀목이지만, 동시에 기대치도 크게 잡히기 때문에 작은 지연이 더 크게 해석되기도 합니다. 저는 파이프라인을 볼 때, 숫자보다 문장을 먼저 봅니다. 보도자료나 학회 요약에서 “추가 분석이 필요” 같은 표현이 반복되면, 그 자체가 신호일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추가 분석’이 나쁜 건 아닙니다. 다만 그 추가 분석이 ‘설명을 더하기 위한 것’인지, ‘흐릿한 결과를 붙들기 위한 것’인지 구분하려고 노력합니다. 몇 해 전 제가 어떤 항암 후보의 2상 데이터를 읽으면서 “수치가 괜찮은데도 마음이 불안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표면적 반응률은 좋았지만, 환자군을 쪼개면 결과가 들쑥날쑥했고, 용량 조절과 중단 사례가 유난히 많았습니다. 결국 시장은 그 불안을 더 크게 받아들였고, 이후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그 경험 이후로 저는 MRK든 어떤 회사든, 2상에서 ‘환자군 정의’와 ‘중단율’ 같은 운영 지표를 꼭 함께 봅니다. 파이프라인의 진짜 강도는, 보기 좋은 숫자보다 “다음 단계에서 흔들리지 않을 구조”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리스크: ‘실패’보다 무서운 것은 ‘해석의 착시’입니다
MRK 파이프라인 리스크를 점검할 때, 저는 실패 가능성 자체보다 “실패를 어떻게 감당하는 구조인가”를 더 크게 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임상은 본질적으로 확률 게임이고, 실패가 없는 파이프라인은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리스크를 바라보는 관점을 ‘사건’이 아니라 ‘구조’로 바꿔야 합니다. 첫째, 리스크가 한 지점에 몰려 있지 않은지 봅니다. 특정 분기에 발표가 과도하게 집중되면, 결과가 좋더라도 기대가 선반영 되어 변동성이 커지고, 나쁘면 충격이 커집니다. 둘째, 경쟁 환경의 리스크입니다. 같은 적응증에 비슷한 기전이 몰리면, 1등만 달콤하고 2등은 갑자기 말이 달라집니다. 셋째, 상업화의 리스크입니다. 승인이라는 문턱을 넘더라도, 급여·약가·가이드라인·현장 경험이 따라오지 않으면 매출 곡선은 생각보다 느리게 움직입니다. 넷째, 제조와 공급망의 리스크도 놓치기 쉽습니다. 바이오의약품일수록 “팔고 싶어도 못 파는” 상황이 실제로 생깁니다. 다섯째, 외부 도입(BD/M&A)의 리스크입니다. 시간이 급할수록 비싸게 살 가능성이 커지고, 기대했던 시너지가 운영 과정에서 희석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리스크를 단순히 “나쁜 것”으로만 분류하지 않는 겁니다. 어떤 리스크는 통제 가능하고, 어떤 리스크는 통제 불가능합니다. 통제 가능한 리스크는 일정 관리, 임상 설계의 일관성, 환자군 전략, 제조 준비 같은 실행력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반면 통제 불가능한 리스크는 경쟁사의 예상 밖 데이터, 규제 환경 변화, 의료 현장의 처방 문화 변화 같은 외부 변수입니다. MRK를 점검할 때는 “이 회사가 통제 가능한 리스크를 얼마나 줄여왔나”를 먼저 보는 편이 현실적입니다. 제가 예전에 어떤 종목을 보며 ‘허들을 낮게’ 잡았던 적이 있습니다. “승인만 받으면 되겠지”라는 생각이었죠. 그런데 실제로는 승인 이후 급여 협상과 처방 채택에 시간이 걸리면서 매출이 기대보다 훨씬 천천히 올라갔습니다. 그때 느꼈습니다. 임상 성공이 결승선이 아니라, 결승선 앞의 마지막 코너일 수 있다는 것을요. 그래서 지금은 MRK를 볼 때도, 임상 단계만 보지 않고 ‘상업화 준비 신호’—예를 들면 적응증의 경쟁 강도, 진료 가이드라인 채택 가능성, 현장 처방의 마찰 같은 것—을 함께 생각합니다. 리스크는 숫자보다 ‘현장’에서 더 크게 터질 때가 있으니까요.
키트루다 이후를 준비하는 MRK를 점검할 때는, “무슨 후보가 있나”보다 “임상 달력의 어디에서 리스크가 바뀌는가”를 보는 편이 훨씬 실전적입니다. 1상은 안전성의 문턱, 2상은 반복되는 효능 패턴과 환자군 정의, 3상은 경쟁 대비 임상적 의미와 일정 안정성, 그리고 승인 이후에는 급여·가이드라인·현장 확산이라는 또 다른 시험이 기다립니다. 결국 투자자에게 필요한 것은 예증된 확신이 아니라, 흔들릴 때마다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체크 프레임입니다. 오늘부터는 MRK의 뉴스 한 줄을 보더라도 “이건 달력의 어느 칸에서 나온 소식인가”를 먼저 떠올려 보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