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크데이(Workday, WDAY)는 인사와 재무를 ‘한 번에’ 다루는 클라우드 ERP로 유명합니다. 겉으로는 소프트웨어 한 종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회사의 돈 흐름과 사람 흐름을 동시에 붙잡는 운영 체계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이 기업을 볼 때는 “기능이 많다”보다 “왜 바꾸기 어렵고, 왜 계속 쓰게 되는가”를 먼저 살펴보셔야 합니다. 이 글은 엔터프라이즈 SaaS에 관심 있는 투자자와 직장인 독자를 위해, AI·구독·성장이라는 세 축이 어떤 방식으로 진입장벽과 투자 매력으로 이어지는지 정리해 드립니다.
AI: ‘예쁜 기능’보다 ‘실무의 불편’을 먼저 지우는 힘
AI 이야기가 나오면 많은 분들이 챗봇이나 자동 보고서를 먼저 떠올리십니다. 하지만 ERP에서 AI의 진짜 가치는 조금 다른 곳에 있습니다. 회사의 인사·재무 데이터는 생각보다 자주 엉키고, 그 엉킴을 풀기 위해 사람의 시간이 꾸준히 들어갑니다. 예를 들어 결산 기간에 같은 비용이 두 번 잡히거나, 부서별 예산 항목이 서로 다른 기준으로 입력돼 비교가 어려워지는 식입니다. 이때 AI가 ‘대신해 준다’보다, “어디가 이상한지 먼저 짚어주는 안내자”가 되어줄 때 효과가 커집니다. 결국 ERP의 AI는 화려한 한 방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작은 마찰을 줄여 조직의 속도를 올리는 쪽으로 가치를 증명합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AI가 잘 작동할수록 데이터가 더 중요해진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도 낯선 사람보다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듯, AI도 짧게 모은 데이터보다 오랜 기간 축적된 데이터에서 훨씬 안정적인 판단을 내립니다. 워크데이는 인사와 재무가 한 플랫폼 안에서 누적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예측과 추천의 정확도를 끌어올리기 유리합니다. 이는 곧 고객이 “굳이 다른 시스템으로 옮겨서 처음부터 다시 학습시켜야 하나?”라고 고민하게 만드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제가 재무팀 일을 할 때입니다. 결산 주간에 야근이 잦아 “이번 달은 무조건 빨리 끝내자” 마음먹었는데, 비용 계정이 평소와 다르게 튀는 항목이 있어요. 예전이라면 여러 시트를 열고 담당자에게 확인 메일을 돌려야 했겠죠. 그런데 시스템이 “지난 6개월 패턴과 비교했을 때 이 항목이 비정상적으로 증가했다”라고 먼저 알려준다면, 저는 그 지점만 집중해서 확인하면 됩니다. 이렇게 ‘찾는 시간’이 줄어드는 순간, AI는 장식이 아니라 생산성 그 자체가 됩니다. 투자 관점에서 보면, 이런 실무 효용은 해지율을 낮추고 추가 도입을 자극하는 쪽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큽니다.
구독: 매출의 예측 가능성보다 ‘관계의 길이’가 더 큰 자산
엔터프라이즈 SaaS의 매력은 “구독이라 안정적”이라는 말 한 줄로 끝나지 않습니다. 더 본질적인 핵심은 고객과의 관계가 길어지면서 생기는 관성입니다. ERP는 한 번 도입하면 조직의 규정, 승인 흐름, 권한 체계, 보고서 양식까지 그 시스템에 맞춰 정리됩니다. 쉽게 말해 회사의 일하는 방식이 소프트웨어에 맞춰 ‘재배열’됩니다. 그러면 계약이 1년 단위로 갱신된다고 해도, 실제 체감은 ‘계속 함께 가는 관계’에 가깝습니다. 이 관계의 길이가 길어질수록, 매출은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매년 반복되는 갱신은 기본값이 되고, 그 위에 모듈 추가나 사용 범위 확대가 얹히며 성장의 층이 쌓입니다. 워크데이의 구독 구조에서 투자자가 눈여겨볼 만한 지점은 “처음 계약 이후의 확장 경로”입니다. 많은 기업이 처음부터 모든 기능을 한 번에 쓰지 않습니다. 인사부터 시작해 급여·성과·인재관리로 넓히거나, 재무에서 출발해 계획/분석으로 확장하는 식이 흔합니다. 이 확장은 단순히 제품을 더 파는 문제가 아니라, 고객 조직의 ‘업무의 중심’에 더 깊이 들어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중심에 가까워질수록 교체의 부담은 커지고, 신규 경쟁사가 들어올 틈은 좁아집니다. 제가 인사팀 시스템 도입을 맡았을 때입니다. 처음엔 채용과 인사발령만 안정적으로 굴러가면 된다고 생각해서 최소 범위로 계약을 맺습니다. 그런데 6개월쯤 지나니 성과평가 시즌이 오고, 매번 엑셀로 취합하던 시간이 너무 아까웠습니다. “평가-보상-승진”이 한 흐름으로 연결되면 팀이 훨씬 편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때 이미 기본 데이터와 권한 체계가 잡혀 있으면, 추가 모듈 도입의 심리적 장벽이 낮아집니다. 결국 “처음엔 작게, 나중엔 자연스럽게 크게”라는 흐름이 만들어지고, 구독 수익의 질이 좋아집니다. 이런 구조가 투자 매력의 뼈대가 됩니다.
성장: 진입장벽은 ‘기술’보다 ‘신뢰의 회계장부’에서 생깁니다
워크데이를 포함한 클라우드 ERP의 성장 논리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회사가 가장 민감하게 관리하는 두 축, 즉 사람(인사)과 돈(재무)을 한곳에서 다룬다는 사실이 모든 것을 바꿉니다. 이 영역은 작은 오류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급여 계산이 한 번 틀리거나, 결산 수치가 흔들리면 내부 신뢰가 무너지고, 때로는 외부 감사·규정 준수 이슈까지 번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업은 ERP를 고를 때 “기능이 더 많다”보다 “문제가 없을 만큼 검증됐는가”를 훨씬 크게 봅니다. 이 신뢰는 단기간에 복제하기 어렵고, 그 자체가 진입장벽이 됩니다. 성장 측면에서는 두 갈래를 함께 보시면 좋습니다. 첫째, 아직도 레거시 시스템을 안고 있는 기업이 많다는 점입니다. 전환을 미뤄온 이유는 다양합니다. 내부 통제가 까다롭거나, 조직이 복잡하거나, 해외 법인이 많거나, 혹은 “바꾸다가 멈추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운영 효율과 데이터 일관성이 중요해지는 환경에서는 결국 전환을 검토하게 됩니다. 둘째, 기존 고객 내에서의 성장입니다. 한 번 들어간 뒤에 더 많은 부서, 더 많은 프로세스로 확장되는 구조가 있다면, 신규 고객이 잠시 느려져도 성장 엔진이 완전히 꺼지지는 않습니다. 엔터프라이즈 SaaS가 ‘느리지만 깊게’ 성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임원진이 “해외 법인까지 한 번에 보이는 재무 대시보드가 필요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각 법인이 서로 다른 시스템을 쓰고 있었습니다. 데이터를 모으려면 인터페이스를 따로 만들고, 기준을 맞추고, 오류를 잡느라 시간이 계속 새어 나갑니다. 이때 플랫폼을 통합하면 일이 단순해지지만, 동시에 “이 정도로 핵심을 맡기려면 정말 믿을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습니다. 결국 성장의 관문은 기술 시연이 아니라 신뢰의 문턱입니다. 워크데이 같은 기업이 시간을 들여 레퍼런스를 쌓는 이유도 여기에 있고, 그 축적이 경쟁사 진입을 어렵게 만듭니다.
워크데이의 투자 매력은 AI·구독·성장이 각각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밀어주는 고리로 연결된다는 점에 있습니다. AI는 실무의 마찰을 줄여 고객 체감 가치를 높이고, 그 체감 가치는 갱신과 확장으로 이어져 구독 수익의 안정성을 강화합니다. 동시에 인사·재무라는 민감한 영역에서 쌓이는 신뢰와 데이터 일관성은 쉽게 무너뜨리기 어려운 진입장벽이 됩니다. 투자 관점에서는 단기 이슈보다 “고객이 왜 계속 남는지, 추가로 무엇을 더 쓰는지”를 중심으로 바라보시면 판단이 훨씬 또렷해지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