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시놉시스(Synopsys, SNPS)가 왜 단순한 EDA 툴 회사로만 보기 어려운가”를 궁금해하시는 분들을 위해 작성했습니다. 특히 반도체 업계가 미세공정, 칩렛, AI 가속기처럼 복잡한 방향으로 갈수록 시놉시스의 돈 버는 방식이 더 선명해지는데요. 핵심은 EDA(설계 자동화 툴)에서 만들어지는 반복 매출, IP(설계자산) 라이선스가 더해주는 성장 탄력, 그리고 유지보수·지원 계약이 묶어주는 장기 고객관계입니다. 저는 이 구조를 ‘한 번 팔고 끝나는 장사’가 아니라 ‘설계를 굴리는 동안 계속 이어지는 동행’에 가깝다고 봅니다. 읽고 나면 “매출이 왜 꾸준히 찍히는지”, “고객이 왜 쉽게 못 떠나는지”, “성장이 어떤 방식으로 확장되는지”를 한 번에 정리하실 수 있을 겁니다.
EDA는 제품이 아니라 ‘설계 운영체제’입니다
EDA를 처음 접하면 “소프트웨어를 파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실제 현장에서는 EDA가 설계팀의 운영체제에 가깝습니다. 칩 개발은 일정표가 생명이고, 일정표는 곧 비용입니다. 그래서 고객사는 특정 툴 하나를 단품으로 사기보다, 설계 흐름 전체를 안정적으로 굴리는 방향으로 계약을 잡습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기간형 라이선스, 엔터프라이즈 단위의 패키지 계약, 그리고 갱신을 전제로 한 반복 과금 구조입니다. 즉, 매출의 뿌리가 “신규 고객 한 번 잡기”가 아니라 “기존 고객이 설계 난이도 상승에 맞춰 쓰는 범위를 넓히기”로 이동합니다. 공정이 작아지고 검증이 까다로워질수록 필요한 툴이 늘어나며, 검증 범위가 넓어질수록 툴 사용량과 지원 수요도 커지니까요. 또 하나 놓치기 쉬운 포인트가 있습니다. EDA는 단순히 기능 목록으로 경쟁하는 시장이 아니라, 고객 내부 프로세스에 얼마나 깊이 박혀 있느냐가 승부를 가릅니다. 스크립트, 자동화 파이프라인, 팀의 작업 습관, 사내 검증 규칙까지 한 덩어리로 엮이면서 교체 비용이 커집니다. 툴을 바꾸는 순간 “성능이 좋아졌다”가 아니라 “전체 흐름이 흔들린다”가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EDA 매출은 락인(이탈 방지)이라는 단어가 지나치게 차갑게 느껴질 정도로, 현실에서는 ‘리스크 회피’에 가깝게 작동합니다. 제가 설계팀 리더였을 때입니다. 테이프아웃 한 달 전, 검증에서 애매한 오류가 발견됐습니다. 이때 새로운 툴로 갈아탄 뒤 성능을 비교하는 선택지는 사실상 사라집니다. “지금 바꾸면 문제를 더 크게 만들 수 있다”는 두려움이 먼저 오거든요. 결국 저는 익숙한 툴 체인에서 지원을 더 받고, 옵션을 추가하고, 계약을 연장하는 쪽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이 장면 하나만 떠올려도, EDA가 왜 반복매출에 친화적인지 감이 오실 겁니다.
IP 라이선스는 ‘시간을 사는 계약’입니다
시놉시스의 IP 비즈니스는 EDA와 결이 다르면서도, 묘하게 맞물립니다. IP는 쉽게 말해 검증된 설계 블록을 빌려 쓰는 것입니다. SoC를 만들 때 모든 것을 직접 개발하면 일정이 늘어나고, 일정이 늘어나면 시장 기회를 놓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객사는 차별화가 되는 코어 영역에 역량을 집중하고, 표준에 가까운 인터페이스나 검증 부담이 큰 블록은 외부 IP를 가져와 속도를 높입니다. 여기서 IP 라이선스는 “기술을 산다”보다 “시간을 산다”에 가까운 의미가 됩니다. 수익 구조도 흥미롭습니다. IP는 도입 시점에 라이선스 비용이 발생하고, 경우에 따라 로열티(출하량 기반)나 업데이트·지원 비용이 붙습니다. 즉, 단발성 매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제품이 실제로 시장에 나가고 물량이 늘어날수록 뒤에서 따라오는 수익이 생길 수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디자인 윈(Design Win)’ 개념입니다. 고객 제품에 한 번 들어간 IP는 다음 세대 제품에서도 연속해서 채택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설계팀은 안정적으로 검증된 블록을 선호하고, 이미 통합해 본 IP는 리스크가 낮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IP는 한 번의 계약이 아니라, 제품 로드맵에 걸쳐 길게 이어질 수 있는 통로가 됩니다. 제가 스타트업에서 AI 엣지 칩을 만들 때입니다. 투자자 앞에서 “6개월 뒤 데모 칩을 보여드리겠다”라고 약속했는데, 고속 인터페이스 블록을 직접 만들자니 검증이 끝도 없습니다. 이때 저는 ‘완벽한 내재화’라는 욕심을 내려놓고, 검증된 IP를 라이선스 해서 일정표를 지키는 쪽을 택합니다. 그 순간 비용은 늘지만, 데모를 제때 내고 다음 투자 라운드를 여는 확률이 올라갑니다. IP 라이선스가 단순 구매가 아니라 생존 전략이 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유지보수·지원은 ‘신뢰를 구독’하게 만듭니다
유지보수(maintenance)와 기술 지원은 겉으로는 부수적인 항목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수익구조의 심장에 가깝습니다. 반도체 설계는 “한 번 구축하면 끝”이 아니라, 공정·표준·툴 버전이 계속 바뀌는 세계입니다. 버전 호환, 패치, 라이브러리 업데이트, 고객별 환경 이슈 대응이 끊임없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유지보수는 단순 AS가 아니라, 설계 일정의 불확실성을 낮추는 보험이 됩니다. 기업 입장에서도 예산을 세우기 좋습니다. 매년 갱신되는 비용으로 ‘안정적인 지원과 최신 대응’을 확보할 수 있으니 운영비 성격이 강해지죠. 이 구조는 시놉시스에게도 의미가 큽니다. 유지보수·지원 비중이 커질수록 매출의 예측 가능성이 높아지고, 예측 가능성은 다시 R&D 투자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R&D 투자는 새로운 툴 기능, 새로운 IP, 더 강한 통합을 낳습니다. 결국 고객은 “도입”이 아니라 “계속 쓰는 과정”에서 더 많은 가치를 얻게 되고, 그 가치가 다음 갱신을 자연스럽게 만듭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고객 락인이 ‘강제로 묶어두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일을 안정적으로 끝내고 싶은 마음이 만든다는 점입니다. 제가 대기업 설계팀에서 신규 공정으로 넘어가는 프로젝트를 맡았을 때입니다. 초반엔 다들 자신만만하지만, 공정 전환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타이밍 이슈와 신호 무결성 문제가 터집니다. 내부에서 밤샘을 해도 답이 안 나올 때, 결국 벤더 지원팀과의 티켓 처리 속도, 레퍼런스 플로우 제공, 패치 적용이 일정에 직결됩니다. 이 경험을 한 번 겪으면 “유지보수 비용을 아끼자”는 말이 급격히 힘을 잃습니다. 설계팀의 목표는 비용 절감이 아니라, 칩을 제때 ‘정상 동작’하게 만드는 것이니까요.
시놉시스의 수익구조는 EDA, IP, 유지보수가 각자 따로 도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서로를 밀어주는 톱니바퀴에 가깝습니다. EDA는 설계 운영체제로 자리 잡으며 갱신과 확장을 만들어내고, IP는 개발 시간을 단축시키는 도구로서 설계 로드맵에 깊게 들어갑니다. 여기에 유지보수·지원이 결합되면 “새 버전 대응과 리스크 관리”라는 현실적인 이유로 관계가 길어집니다. 그래서 SNPS를 볼 때는 단순히 ‘EDA 점유율’만 보시기보다, 반복매출의 질, IP 채택의 연속성, 지원 체계가 만들어내는 신뢰까지 함께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이 관점이 생기면 기업의 성장 스토리가 훨씬 입체적으로 읽히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