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2026년 1월 기준으로, 보험·위험 분석 데이터 기업인 베리스크 애널리틱스(Verisk Analytics, VRSK)를 처음 접하신 분들을 위해 정리했습니다. 특히 “데이터를 많이 가진 회사”라는 설명이 왜 충분하지 않은지, 그리고 왜 어떤 데이터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단단한 해자로 변하는지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독자분이 보험업계 종사자가 아니더라도 이해하실 수 있도록, 보험데이터가 현장에서 어떻게 쓰이고, 어떤 지점에서 대체가 어려워지는지, 위험분석이 왜 ‘선택’이 아니라 ‘필수’로 굳어지는지를 차근차근 풀어드리겠습니다. 단순한 기업 소개가 아니라, 데이터 독점이 해자가 되는 구조를 읽고 나서 “아, 그래서 이 비즈니스가 강하구나”라고 납득하실 수 있게 돕는 것이 목표입니다.
보험데이터: 보험사가 매일 쓰는 ‘공통 언어’를 누가 쥐느냐
보험은 한마디로 “불확실함을 숫자로 번역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그 번역이 매끄럽게 되려면, 업계 전체가 공유하는 공통 언어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같은 ‘사고’라도 어떤 항목으로 분류하고, 어떤 속성(지역, 시설, 운전자 특성 등)으로 쪼개고, 어떤 기준으로 비교할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이런 분류 체계와 참조 데이터가 널리 쓰이기 시작하면, 그 순간부터는 단순한 데이터 공급이 아니라 업계의 문법을 제공하는 위치가 됩니다. 문법을 가진 쪽이 강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문법이 바뀌면 문장을 전부 다시 써야 하니까요. 보험사는 요율, 인수 심사, 청구 처리, 손해율 관리까지 업무 흐름이 길고 촘촘합니다. 이 흐름 중간중간에 “이 항목은 이렇게 정의한다” “이 위험은 이런 방식으로 비교한다” 같은 기준이 박혀 들어가면, 다른 체계로 옮기는 일은 생각보다 거칠고 비용이 큽니다. 전산을 바꾸는 것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내부 규정, 보고서 형식, 교육 자료, 감사 대응 논리까지 함께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험사가 원하는 것은 ‘한 번 잘 맞춰둔 기준’을 오래 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준이 업계에서 널리 통용될수록, 그 회사는 자연스럽게 강한 자리에 앉게 됩니다. 여기에서 베리스크의 해자를 이해하는 첫 단추가 끼워집니다. 보험데이터는 물처럼 흘러 다니는 정보가 아니라, 업무를 굴리는 레일에 가깝습니다. 레일이 깔리면 기차는 잘 달리지만, 레일을 갈아엎는 순간 역 전체가 멈춥니다. 보험사는 멈추는 것을 싫어합니다. 결국 “더 싸게 팔게요”라는 제안보다 “당장 멈추지 않고 계속 굴러가게 해 드릴게요”라는 약속이 더 강하게 작동합니다. 제가 협업했던 보험사에서 내부 시스템을 바꾼 적이 있습니다. 단순히 데이터 공급업체를 바꾸는 선택처럼 보이지만, 막상 체크리스트를 적어보니 항목이 끝없이 늘어났습니다. 요율 산식에 들어가는 참조값 수정, 언더라이팅 화면의 입력 규칙 변경, 청구 담당자가 보는 코드 체계 재교육, 과거 데이터와의 정합성 검증, 그리고 무엇보다 “왜 기준을 바꿨는지”를 설명하는 문서 작업까지요. 그때 느낀 건 딱 하나였습니다. 보험데이터의 표준은 편의가 아니라 ‘운영의 안정’이고, 안정은 곧 해자의 재료가 된다는 점입니다.
독점: 비슷한 데이터가 아니라 ‘같은 결과’를 내야 대체가 됩니다
데이터 독점이라는 말을 들으면 종종 “경쟁이 없으니 가격을 올린다”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릅니다. 하지만 보험 영역에서 더 무서운 독점은 가격표가 아니라 ‘품질의 시간’에서 나옵니다. 보험에 쓰이는 데이터는 단순히 많이 모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래 쌓여야 의미 있는 패턴이 드러납니다. 손해는 어느 날 갑자기 튀기도 하고, 특정 조건이 겹칠 때만 폭발하기도 하며, 사기는 유행처럼 번지다가 형태를 바꾸기도 합니다. 이런 변덕스러운 신호를 잡으려면, 단발성 데이터가 아니라 장기간 축적과 정리, 검증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경쟁사가 “우리도 비슷한 데이터 있습니다”라고 말해도, 보험사는 한 번 더 묻습니다. “그래서 우리 손해율을 안정시키는 데 실제로 도움이 되나요?” 결국 대체는 ‘데이터의 유사성’이 아니라 ‘결과의 일치’로 판단됩니다. 여기서 난도가 급격히 올라갑니다. 결과가 일치하려면 데이터의 범위뿐 아니라 결측치 처리, 분류 기준, 업데이트 주기, 예외 케이스 대응 방식까지 비슷해야 합니다. 한두 항목이 달라지면 모델 출력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그 미세한 흔들림이 비용과 수익성으로 번집니다. 보험사는 이런 흔들림을 싫어합니다. 또 하나, 독점이 해자가 되는 지점은 협업의 구조에 있습니다. 보험업계는 혼자서만 움직이지 않습니다. 재보험, 중개인, 손해사정, 리스크 컨설팅 등 다양한 참여자가 같은 사건을 보고 각자 판단을 내립니다. 이때 공통으로 참고하는 데이터 체계가 있으면, 의사소통이 빨라지고 분쟁이 줄어듭니다. 반대로 각자 다른 데이터를 들이밀면, 같은 사고를 두고 서로 다른 결론을 내리는 일이 생깁니다. 결론이 다르면 결국 비용이 늘어납니다. 그러니 업계는 자연스럽게 “다 같이 쓰는 기준” 쪽으로 쏠립니다. 이 쏠림이 커질수록, 선점한 데이터 체계는 더 희소해지고 더 견고해집니다. 제가 공개 자료를 읽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동일한 사건을 서로 다르게 정의하면 숫자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경험을 자주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지역의 위험도를 비교한다고 해도, 경계(행정구역)를 어디까지로 잡는지, 과거 사건을 어떤 조건으로 포함하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제가 문서 몇 개를 놓고 정의를 맞춰보려 했더니,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갔습니다. “이 항목은 여기서는 포함, 저기서는 제외” 같은 작은 차이가 쌓이면서 비교 자체가 어려워지더군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보험데이터에서 독점이란, 정보를 숨겨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같은 기준으로 말할 수 있는 체계’를 먼저 구축한 쪽이 얻는 시간의 우위라는 점입니다.
위험분석: 재난과 변동성이 커질수록 ‘모델+운영’이 한 몸이 됩니다
2026년 현재 보험업계가 체감하는 공통 과제는 변동성입니다. 자연재해의 빈도와 강도에 대한 불확실성, 수리비와 인건비의 상승, 공급망 이슈, 그리고 사기 패턴의 진화까지 겹치면서 손해율이 흔들립니다. 이럴수록 보험사는 단순히 “데이터를 더 사자”가 아니라 “판단 과정을 더 촘촘하게 만들자”로 방향을 틉니다. 여기서 위험분석은 보고서 한 장이 아니라, 인수부터 청구까지 이어지는 흐름 속으로 들어갑니다. 위험분석이 해자가 되는 이유는, 모델이 ‘의사결정의 습관’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특정 영역에서만 쓰이던 분석이, 시간이 지나면 여러 부서의 공통 도구가 됩니다. 인수팀은 위험 점수를 보고 승인 여부를 판단하고, 요율팀은 가격 조정을 설계하며, 청구팀은 이상 징후를 감지하고, 경영진은 포트폴리오의 취약 구간을 점검합니다. 이때 중요한 건 모델의 정확도만이 아닙니다. 모델이 얼마나 빠르게 업데이트되고, 현장 시스템에 얼마나 자연스럽게 붙고, 결과를 설명 가능한 형태로 제공하느냐가 더 크게 작동합니다. 보험은 “맞혔습니다”만으로 끝나지 않고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까지 요구되는 산업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재난 리스크 같은 영역에서는 특히 ‘데이터의 연결’이 중요해집니다. 노출도(어디에 무엇이 얼마나 있는지), 사건의 강도, 취약도(얼마나 피해를 받는지)가 서로 물려 돌아가는데, 이 세 가지가 따로 놀면 모델이 현장에 닿지 못합니다. 결국 위험분석 기업이 강해지려면, 데이터와 모델이 한 덩어리로 굴러가야 하고, 그 덩어리가 고객사의 운영 레일 위에 얹혀야 합니다. 레일 위에 올라간 순간, 단순한 공급이 아니라 ‘업무의 일부’가 됩니다. 업무의 일부는 쉽게 교체되지 않습니다. 지인이 운영하는 보험사가 갑자기 재난 노출이 커진 지역의 인수 기준을 조정해야 하는 적이 있었습니다. 이때 단순히 지도 한 장을 보고 결정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어떤 건물이 얼마나 밀집해 있는지, 유사한 사건에서 피해가 어떻게 분포했는지, 지금의 비용 구조에서는 손해가 얼마나 커질지까지 함께 봐야 합니다. 결론을 내리기까지 필요한 입력값이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결국 “분석을 잘한다”는 말은, 계산을 잘한다는 뜻이 아니라 필요한 데이터를 제때 가져오고, 그 결과를 현장 의사결정에 바로 연결한다는 뜻이더군요. 이런 연결이 한 번 자리 잡으면, 다음부터는 그 흐름을 버리고 새로 만들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위험분석은 시간이 지날수록 해자에 가까워집니다.
베리스크의 강점은 ‘데이터를 보유했다’는 사실보다, 보험사가 일하는 방식과 판단의 언어 속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는 구조에서 나옵니다. 보험데이터가 공통 언어가 되면 운영이 안정되고, 그 안정은 쉽게 포기하기 어려운 가치가 됩니다. 여기에 장기간 축적된 데이터의 시간 우위가 더해지면, 경쟁자는 비슷한 제품을 내는 수준으로는 부족해지고 ‘같은 결과’를 재현해야 하는 높은 벽을 마주합니다. 마지막으로 위험분석이 운영 흐름과 결합할수록, 서비스는 옵션이 아니라 필수 도구로 자리 잡습니다. 투자나 산업 이해 관점에서 베리스크를 볼 때는, 제품 목록보다도 “업무 레일에 얼마나 붙어 있는가”를 먼저 점검해 보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