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2026년 1월 17일 기준으로, 무디스(Moody’s, MCO) 같은 신용평가사가 왜 소수만 살아남는 구조에서 꾸준히 영향력을 유지하는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을 위해 작성했습니다. 특히 “경기 침체가 오면 금융회사도, 기업도 흔들리는데 왜 신용평가사는 쉽게 무너지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중심에 두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무디스의 힘은 멋진 슬로건이 아니라 시장의 바닥에 깔린 설계에서 나옵니다. 라이선스가 길을 막고, 데이터가 시간을 잠그며, 신뢰가 사람들의 습관을 굳힙니다. 마치 오래된 도시의 지하철 노선처럼요. 새 노선을 만들 수는 있어도, 모두가 이미 익숙한 환승 체계를 하루아침에 바꾸긴 어렵습니다. 오늘은 그 구조를 ‘라이선스, 데이터, 신뢰’라는 세 단어로 풀어보겠습니다. 투자자든, 기업 실무자든, 혹은 금융을 처음 접하시는 분이든 “아, 그래서 이 시장이 이렇게 굳어졌구나” 하고 납득하실 수 있도록 최대한 사람 말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라이선스: 제도가 만든 ‘통행증’이 시장을 잠급니다
신용평가 시장을 이해할 때 가장 먼저 봐야 할 것은 실력 싸움이 아니라 ‘통행증’입니다. 여기서 통행증이란, 법과 제도, 그리고 시장 관행이 합쳐져 만들어낸 라이선스의 힘을 말합니다. 신용평가사는 단순히 점수를 매기는 회사가 아니라, 금융시장에서 위험을 표시하는 공용 표지판 같은 존재입니다. 채권을 발행하거나 대출을 크게 일으키려는 기업은 투자자에게 “우리는 이 정도 위험입니다”를 설명해야 하는데, 그 설명이 개인의 말솜씨만으로는 통하지 않습니다. 결국 공신력 있는 등급이 필요해지고, 많은 기관투자자나 금융기관은 내부 규정상 특정 기준을 충족한 평가사의 등급만을 리스크 산정과 투자 판단에 반영합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등급이 필요해서 받는 수요’가 생깁니다. 흥미로운 점은 침체기일수록 이 수요가 더 단단해진다는 것입니다. 경기가 좋을 때는 대충 넘어가던 리스크도, 경기가 나빠지면 서류 한 장, 문구 하나가 칼같이 중요해지니까요. 여기에 컴플라이언스와 책임 구조가 얹히면, 새 사업자가 들어오는 길은 더 좁아집니다. 이해상충 관리, 모델 검증, 정보보안, 문서화, 감사 대응, 소송 리스크까지… 평가사는 “잘 맞추는 것”만큼 “절차가 무너지지 않는 것”을 증명해야 합니다. 그래서 대형 평가사는 일종의 ‘제도형 인프라’처럼 자리 잡습니다. 그리고 인프라는 보통, 고장 나지 않는 한 잘 바뀌지 않습니다. 몇 년 전, 제가 참여했던 프로젝트에서 한 중견기업이 회사채를 발행하려고 준비한 적이 있습니다. 내부에서는 “요즘 실적도 괜찮은데 굳이 큰 평가사 등급이 필요하냐”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주관사 미팅에서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기관투자자 수요예측을 생각하면 특정 수준의 등급 체계가 필요하고, 어떤 투자자는 내부 규정 때문에 특정 평가사 등급이 없으면 아예 참여가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온 겁니다. 결국 기업은 비용이 들더라도 ‘시장에 통용되는’ 등급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느꼈습니다. 이 시장은 서비스가 아니라, 통행증에 가깝다고요. 침체기에는 그 통행증의 가치가 더 커집니다. 불안할수록 사람은 “규정대로, 관행대로” 움직이니까요.
데이터: 시간의 두께가 곧 경쟁력입니다
무디스의 두 번째 축은 데이터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데이터는 단순히 숫자 몇 개를 모아둔 창고가 아닙니다. 신용평가에서 데이터는 ‘시간의 두께’입니다. 호황과 침체, 금리 급등과 급락, 산업의 흥망, 특정 이벤트의 반복을 한꺼번에 꿰어볼 수 있는 긴 시계열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시계열은 하루아침에 복제되지 않습니다. 침체기가 오면 특히 그렇습니다. 평소엔 비슷해 보이던 기업들이 충격 앞에서 다른 반응을 보이고, 그 차이를 가르는 요인이 무엇인지 시장은 집요하게 묻습니다. 그때 필요한 것은 감이 아니라 축적된 사례입니다. “이 레버리지 수준에서 어떤 조건이 겹치면 위험이 급격히 커졌는가”, “유동성 공백이 어느 지점에서 치명적이 되는가” 같은 질문은 결국 과거의 수많은 케이스에서 길어 올려야 합니다. 게다가 데이터는 ‘표준화된 언어’로 정리될 때 힘을 가집니다. 산업별 핵심 지표를 무엇으로 볼지, 재무제표를 어떤 기준으로 조정할지, 비재무 리스크를 어디까지 반영할지 같은 방식이 평가사마다 다르면 시장은 혼란스러워집니다. 그래서 시장은, 반복적으로 쓰이며 검증된 프레임을 선호합니다. 무디스 같은 선두 업체는 오랜 기간 동안 이 프레임을 다듬어 왔고, 발행사와 투자자 역시 그 프레임에 맞춰 자료를 준비하고 설명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이쯤 되면 데이터는 단순한 자산이 아니라 운영 시스템이 됩니다. 바꾸려면 숫자만 옮기는 게 아니라, 일하는 방식 전체를 바꿔야 하니까요. 또 하나 중요한 포인트는 데이터가 ‘반복 수익’과 잘 결합된다는 점입니다. 등급은 한 번 매기고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정기적인 모니터링과 전망 업데이트가 이어집니다. 침체기에는 이벤트가 늘고, 질문도 많아집니다. 거래가 줄어도 리스크 관리는 오히려 더 자주 돌아갑니다. 그래서 데이터 기반의 리서치와 분석 도구는 침체 국면에서 완충재가 되곤 합니다. 쉽게 말해, 시장이 시끄러울수록 사람들이 더 자주 계기판을 들여다보는 셈입니다. 제가 한때 리스크 관련 업무를 도우며 “부도 가능성”을 주제로 내부 보고서를 만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처음엔 재무비율 몇 개만 보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시장이 흔들리기 시작하자 질문이 달라졌습니다. “이 업종은 침체 2년 차에 더 위험해지나, 1년 차에 더 위험해지나?”, “금리 상승과 원자재 가격 변동이 동시에 오면 과거에는 어떤 순서로 문제가 터졌나?” 같은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그때 느꼈습니다. 데이터는 많이 모으면 되는 게 아니라, 시간이 쌓여야 답이 나온다는 것을요. 그리고 그 시간은 돈으로도 단기간에 사기 어렵습니다. 이 시간의 두께가 무디스 같은 회사의 벽을 더 두껍게 만듭니다.
신뢰: 모두가 쓰는 기준이 되면, 경쟁은 ‘습관’에 막힙니다
마지막 축은 신뢰입니다. 그런데 신용평가에서 신뢰는 “맞혔다, 틀렸다”의 단순한 성적표가 아닙니다. 신뢰는 시장 참여자들이 함께 쓰는 공통 언어가 되느냐의 문제입니다. 등급은 투자자만 보는 것이 아니라, 발행사, 주관사, 은행, 규제 대응 팀, 회계·감사, 심지어 계약서를 쓰는 법무팀까지 함께 사용합니다. 즉 등급은 금융의 문장부호입니다. 모두가 같은 문장부호를 쓰면 글이 빨리 읽히고, 다르게 쓰면 오해가 생깁니다. 무디스 같은 평가사가 강한 이유는, 이 문장부호가 이미 시장의 습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습관이 되면 바꾸기가 어렵습니다. 새 평가사가 더 좋은 분석을 보여줘도, 시장은 “다른 사람도 그걸 믿을까?”를 먼저 묻습니다. 신뢰가 네트워크 효과를 갖는 이유입니다. 침체기에는 이 신뢰가 더 단단해집니다. 사람은 불안할수록 기준점이 필요합니다. 전망 변경, 등급 워치, 핵심 리스크 요인의 정리 같은 ‘정돈된 신호’가 시장에 주는 심리적 효과는 생각보다 큽니다. 물론 평가사가 완벽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등급이 이미 시스템과 계약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대출 계약에는 특정 등급 아래로 내려가면 추가 담보를 요구하거나 금리가 올라가는 조항이 들어가기도 합니다. 투자기관 내부 규정에는 “이 등급 이하 보유 제한”이 걸려 있기도 합니다. 이런 연결고리는 전환비용을 만듭니다. 새로운 평가사의 등급을 받아들이려면 계약 문구, 내부 규정, 리스크 모델, 보고 체계를 한꺼번에 바꿔야 합니다. 침체기일수록 조직은 변화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기존 표준은 더 강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가 투자 관련 회의에 배석했던 때가 떠오릅니다. 시장 변동성이 커졌던 시기였는데, 한 종목을 두고 의견이 갈렸습니다. 어떤 분은 “실적이 아직 괜찮다”라고 했고, 다른 분은 “유동성 환경이 변했다”라고 했습니다. 그때 논쟁을 정리해 준 건 의외로 단순한 문장이었습니다. “등급 전망이 바뀌면 우리 내부 한도에서 자동으로 경고가 뜹니다.” 그 한 문장에 회의의 무게추가 옮겨갔습니다. 누구의 감이 더 맞느냐가 아니라, 조직이 실제로 움직이는 스위치가 무엇이냐가 핵심이었던 겁니다. 그 경험 이후로 저는 신용등급을 ‘의견’이라기보다 ‘스위치’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스위치를 쥔 쪽이 시장에서 오래 버팁니다. 무디스가 침체기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무디스의 독점적 위치는 마치 세 겹의 문처럼 작동합니다. 첫 번째 문은 라이선스입니다. 제도와 관행이 만든 통행증이어서 쉽게 복제되지 않습니다. 두 번째 문은 데이터입니다. 시간이 쌓여야 의미가 생기는 축적의 자산이라 단기간에 따라가기 어렵습니다. 세 번째 문은 신뢰입니다. 등급이 시장의 공용 언어이자 계약의 스위치가 되면서, 전환비용이 급격히 커집니다. 그래서 침체기에도 “등급이 필요해서 생기는 수요”와 “불안할수록 커지는 기준점 수요”가 남아 평가사의 사업은 상대적으로 단단해집니다. 만약 투자 관점에서 접근하신다면, 다음 단계로는 ‘등급 발행(거래)과 구독형 데이터(반복수익)의 비중이 경기 민감도를 어떻게 바꾸는지’를 함께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보면, 신용평가사는 단순한 금융 서비스가 아니라 금융 인프라의 일부라는 사실이 더 선명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