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리어드 사이언시스(Gilead Sciences, GILD)를 “HIV·간염 치료제 강자”라는 한 문장으로만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HIV 매출이 왜 쉽게 무너지지 않는지 ‘처방의 관성’과 제품 구조로 이해하는 것. 둘째, 특허 만료(LoE) 리스크를 공포가 아니라 “일정이 있는 변수”로 바꿔서 파이프라인과 연결해 보는 것입니다. 숫자를 외우기보다, 재무·임상·경쟁 구도를 한 장의 체크리스트로 정리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표입니다.
HIV: ‘환자 수’보다 ‘전환의 이유’를 읽어야 흐름이 보입니다
HIV 사업을 볼 때 많은 분들이 먼저 “환자가 늘어나나요, 줄어나요?”를 묻습니다. 물론 중요한 질문이지만, 길리어드의 강점은 그보다 한 단계 안쪽, 즉 환자가 왜 굳이 약을 바꾸는지에 있습니다. HIV 치료는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에 가깝습니다. 복약 편의성, 장기 안전성, 약물 상호작용, 내성 관리 같은 요소가 누적되면서 의사와 환자의 선택이 굳어지고, 그 선택이 매출의 바닥을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투자자는 “신규 유입”만 보지 말고 “기존 환자 유지”와 “같은 회사 내 제품 간 전환”이 어떤 논리로 일어나는지 먼저 확인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여기서 도움이 되는 관점이 하나 있습니다. HIV는 가격표만으로 움직이는 시장이 아니라 ‘생활의 불편함을 줄이는 방향’으로 조금씩 이동하는 시장이라는 점입니다. 하루 한 번, 식사와 상관없이, 부담이 적고, 장기 데이터가 쌓인 조합이 결국 선택받습니다. 이 구조에서는 공격적인 할인보다 ‘가이드라인과 처방 패턴’이 더 큰 힘을 가집니다. 따라서 실적을 읽을 때는 매출액 하나만 보지 마시고, 회사가 어떤 제품군을 “표준 치료의 자리”에 올려놓으려 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환자 접근성(보험, 리베이트, 공공조달)이 어떻게 설계되는지를 함께 보셔야 합니다. 예전에 지인과 함께 해외 제약사 실적 자료를 공부하던 시절이 있었는데요. 그 지인은 “HIV는 성장이 끝났으니 이제 내려갈 일만 남았다”라고 단정하더군요. 저는 그 말이 찜찜해서, 단순 성장률 대신 ‘처방이 바뀌는 이유’를 중심으로 자료를 다시 훑어봤습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게 “새 환자”가 아니라 “기존 환자가 더 편한 조합으로 이동하는 흐름”이었고, 그 흐름이 분기마다 매출의 하단을 받치고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그때부터 HIV를 ‘환자 수 그래프’가 아니라 ‘전환의 논리’로 읽기 시작했고, 이 관점이 이후 다른 제약사를 볼 때도 꽤 유용한 기준이 되어 주었습니다.
간염: 간염 C의 ‘성공 후 정상화’를 착각하지 않는 법
길리어드 이야기에서 간염, 특히 간염 C는 늘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한때는 치료제가 시장을 뒤집으면서 매출이 폭발했고, 그 기억이 “간염이 곧 성장”이라는 이미지로 굳어졌지요. 하지만 간염 C는 구조가 조금 다릅니다. 완치에 가까운 치료가 가능해지면, 그동안 쌓여 있던 미치료 환자가 단기간에 치료로 몰리면서 매출이 급증합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풀어야 할 ‘묵은 숙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 시장은 자연스럽게 성숙 단계로 들어가고, 매출은 정상화(혹은 둔화)됩니다. 이때 생기는 함정이 있습니다. 매출이 내려오면 경쟁력이 떨어졌다고 오해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시장이 가진 물리적 특성 때문에 생기는 변화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간염을 볼 때는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왜 성장하지 않지?”가 아니라 “지금 남아 있는 환자 풀은 어떤 사람들인가?”가 더 정확합니다. 진단율이 낮아 치료로 연결되지 않는 집단, 의료 접근성이 부족한 국가, 치료 확대 정책이 더디게 진행되는 지역 등이 남아 있는 ‘잔여 시장’의 성격을 결정합니다. 투자자의 관점에서는 이 잔여 시장이 얼마나 빠르게 드러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격·입찰·유통 구조가 어떻게 바뀌는지가 핵심입니다. 즉 간염 부문은 과거의 폭발을 기준점으로 삼기보다, 지금의 안정적 현금흐름이 전체 사업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방어막인지, 재투자 재원인지)를 보는 편이 현실적입니다. 제가 지인의 가족 모임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한 분이 건강검진에서 간 수치가 애매하게 나왔는데도 “바쁘다”는 이유로 추가 검사를 미루고 계셨습니다. 몇 달 뒤에야 정밀검사를 받았고, 그제야 치료로 연결되었지요. 저는 그때 ‘치료제의 성능’만으로 시장이 커지지 않는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진단-연결-치료라는 경로가 막히면, 아무리 좋은 약도 매출로 이어지기 어렵습니다. 간염 부문을 볼 때 정책, 검사 접근성, 국가별 치료 확대가 함께 언급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전환: 특허 만료(LoE) 리스크를 ‘달력’과 ‘대체 엔진’으로 나눠 보세요
특허 만료 리스크는 제약 투자에서 피할 수 없는 단어입니다. 다만 중요한 건, LoE를 “한 번에 무너지는 사건”으로 상상하는 순간 판단이 흐려진다는 점입니다. 특허 만료는 제품별로 시점이 다르고, 지역별로도 다르게 진행되며, 소송·합의·제형 변화·적응증 확장 등 여러 장치가 겹쳐져 나타납니다. 그래서 저는 LoE를 볼 때 딱 두 칸으로 나눕니다. 첫째는 ‘달력’입니다. 언제 어떤 제품에서 경쟁이 강해질 가능성이 있는지, 매출 기여도가 큰 순서대로 정리합니다. 둘째는 ‘대체 엔진’입니다. 그 공백을 메울 수 있는 후보가 무엇인지—새 치료 영역, 신약 출시, 적응증 확장, 혹은 인수합병—을 같은 표 위에 올려두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누면 파이프라인 평가도 훨씬 현실적으로 바뀝니다. “좋아 보이는 후보가 있나?”가 아니라 “언제, 얼마만큼의 공백이 생기는데 그 시점에 맞춰 어떤 후보가 준비되어 있나?”로 질문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임상 단계가 뒤쪽(후기)에 있을수록 시간표의 신뢰도는 높아지고, 초기 단계일수록 기대는 크지만 변동성도 커집니다. 따라서 전환 국면에서는 파이프라인 자체뿐 아니라 회사의 자본 배분(연구개발 투자, 파트너십, 인수합병, 주주환원)이 함께 읽혀야 합니다. 현금흐름이 강한 회사일수록, 내부 개발만 고집하지 않고 외부에서 퍼즐 조각을 사 오는 선택지가 실제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제약 섹터 스터디를 할 때 저는 “특허 만료 = 매출 급락”이라는 공식을 너무 쉽게 믿고, 특정 기업의 주가가 흔들릴 때마다 겁부터 났습니다. 그런데 스터디에서 한 분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달력만 보지 말고, 엔진도 같이 보라.” 그 말이 계기가 되어 저는 LoE 시점 옆에 임상 일정, 승인 가능성, 그리고 회사가 과거에 M&A로 빈자리를 채운 전례를 함께 적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같은 ‘특허 만료’ 뉴스라도 기업마다 충격의 크기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고, 오히려 불확실성이 줄었습니다. 전환을 판단하는 핵심은 결국 ‘달력’과 ‘대체 엔진’을 동시에 보는 습관입니다.
길리어드를 볼 때는 “HIV 강자”라는 인상에 머무르기보다, HIV는 전환의 논리로, 간염은 시장 성숙의 구조로, 그리고 LoE는 달력과 대체 엔진으로 나눠서 점검해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이 세 가지 프레임을 동시에 적용하면, 단기 뉴스가 만들어내는 과장된 공포나 막연한 기대에서 한 발 떨어질 수 있습니다. 결국 투자 판단은 ‘이 회사가 어떤 속도로 전환을 해낼 수 있나’라는 질문으로 모입니다.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꾸준히 업데이트해 보시면,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흔들림이 줄어드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