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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의 경제 해부 (UNH, 데이터, 협상력)

by 매너남자 2026. 1. 19.

유나이티드 헬스의 보험, 의료 서비스 이미지

이 글은 미국 헬스케어 산업을 관심 있게 바라보는 투자자와, ‘보험+의료서비스 결합’이 왜 강력하다고 불리는지 알고 싶은 분들을 위해 작성했습니다. 유나이티드헬스(UnitedHealth, UNH)는 보험사로서 가입자를 모으는 데서 끝나지 않고, Optum을 통해 약국·데이터·진료지원·청구 운영까지 넓게 엮어 왔습니다. 그래서 “규모가 곧 해자”라는 말이 따라붙지요. 다만 2026년 현재, 의료비 상승과 규제 강화, 병원 시스템의 대형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질문도 커졌습니다. 규모가 커지면 정말로 비용이 줄기만 할까요? 아니면 어느 순간부터는 오히려 무거운 덩치가 발목을 잡을까요? 이 글은 UNH의 규모를 ‘데이터’와 ‘협상력’이라는 두 엔진으로 쪼개 보고, 그 엔진이 힘을 내는 구간과 힘이 세는 구간을 생활감 있는 언어로 정리해 드리려 합니다.

규모의 경제는 ‘크기’가 아니라 ‘표준화된 운영’에서 시작됩니다

UNH의 규모를 이야기할 때 많은 분들이 가입자 수를 먼저 떠올리십니다. 물론 가입자 풀(pool)이 커지면 위험이 분산되고, 행정비가 넓게 나뉘어 단가가 내려갑니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어느 대형 보험사도 비슷하게 말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UNH의 색깔은 그다음에 나타납니다. 보험이 돈을 “내는” 구조라면, 의료서비스 운영은 돈이 “새는 구멍”을 찾아 막는 구조에 가깝습니다. Optum이 강한 이유는 바로 이 새는 구멍을 ‘표준화된 절차’로 줄여 온 데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청구가 들어오는 과정, 사전승인과 적정성 심사, 만성질환 관리 프로그램 운영, 약제 처방의 안내까지가 흩어진 기관의 협업이 아니라 하나의 운영 체계로 정렬되면, 같은 비용을 쓰더라도 결과가 달라집니다. 규모는 그 표준화를 가능하게 하는 바탕입니다. 인력과 IT 투자, 임상 프로그램 설계 같은 고정비를 크게 깔아 두고도 버틸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표준화”가 항상 쉬운 덕목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조직이 커질수록 현장은 제각각입니다. 지역별 병원 관행도 다르고, 고용주 고객의 요구도 다르고, 규제 환경도 미묘하게 다르지요. 규모가 커지면 오히려 예외 케이스가 폭증해서, 매뉴얼이 늘어나고, 승인 절차가 더 복잡해지는 역설이 생깁니다. 규모의 경제가 규모의 비경제로 변하는 순간입니다. 제가 이 지점을 실감한 건 몇 년 전 미국 출장 때였습니다. 감기 정도로 급한 진료가 필요해 긴급진료센터(urgent care)를 찾았는데, 접수부터 결제까지 앱과 콜센터, 현장 창구가 따로 놀아 서류가 두 번씩 요구되더군요. “대형 시스템이면 더 매끈하겠지”라는 기대가 있었는데, 오히려 시스템이 크다 보니 예외 처리의 층이 두껍고, 그 틈에서 환자 경험이 거칠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규모는 ‘자동 할인’이 아니라, 운영을 얼마나 한 방향으로 묶어내느냐에 따라 이익이 되기도 하고 짐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요. 결국 UNH의 규모가 유효하려면, 확장 자체보다 표준화의 품질과 현장 실행력이 먼저 따라가야 합니다.

데이터는 비용을 줄이기도 하지만, ‘현장 행동’이 없으면 숫자만 남습니다

UNH의 데이터 경쟁력을 말할 때 흔히 “데이터가 많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건 양이 아니라 연결입니다. 보험 청구 데이터는 진단과 처치의 흔적을 남기고, 처방 데이터는 약물 사용과 순응도를 보여줍니다. 여기에 콜센터 상담 기록, 케어 매니저의 개입 이력, 네트워크 내 의료기관 이용 패턴이 이어지면 ‘언제’ 개입해야 비용이 꺾이는지 힌트가 보입니다. 예를 들어 응급실로 가기 직전의 경고 신호를 잡아 외래 진료로 돌리거나, 재입원이 잦은 환자를 퇴원 직후 집중 관리로 묶는 방식이지요. 이때 규모는 데이터의 신뢰도를 높입니다. 표본이 커질수록 패턴이 뚜렷해지고, 프로그램의 성과를 검증할 수 있는 바탕도 단단해집니다. 다만 데이터가 실제 절감으로 이어지려면 반드시 한 가지 단계가 더 필요합니다. ‘알아내는 것’과 ‘움직이게 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고위험군을 식별해도, 환자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끝입니다. 병원이 협력하지 않으면 끝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환자가 “감시받는다”는 불편함을 느끼면, 데이터는 신뢰가 아니라 반감으로 돌아옵니다. 2026년에는 프라이버시와 공정성에 대한 요구가 더 강해졌고, 데이터 활용의 경계가 선명해졌습니다. 결국 데이터가 강점이 되려면 기술이 아니라 관계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환자에게는 이해 가능한 설명이, 공급자에게는 납득할 인센티브가, 규제당국에는 투명한 근거가 필요합니다. 저는 예전에 건강검진 결과를 앱으로 통합 관리해 준다는 서비스를 써본 적이 있습니다. 그래프가 예쁘게 정리되고 “당신은 위험군입니다”라는 알림도 잘 오더군요. 그런데 정작 다음 행동은 막막했습니다. 어디로 예약을 잡아야 하는지, 비용은 얼마나 들지, 지금 뭘 먼저 해야 하는지 길 안내가 없으니 알림은 불안만 키웠습니다. 그 경험이 데이터의 한계를 잘 보여줬습니다. 정보는 충분했지만, 행동으로 연결되는 다리가 없었던 겁니다. UNH의 데이터도 마찬가지입니다. 데이터가 강하면 강할수록 “실행 경로”를 설계하는 역량이 더 중요해집니다. 즉, 데이터는 엔진이고, 실행은 바퀴입니다. 엔진만 커진다고 차가 멀리 가지는 않습니다.

협상력의 힘은 ‘상대가 분산돼 있을 때’ 크고, ‘상대도 커지면’ 줄어듭니다

규모의 경제를 가장 쉽게 체감하는 장면은 협상 테이블입니다. 가입자가 많으면 병원과 의사 네트워크에 “이 가격이면 계약하자”는 조건을 제시할 여지가 커집니다. 약국혜택관리(PBM)와 처방집 설계 능력이 있으면, 약가 인상 압력을 흡수할 장치도 늘어납니다. 그리고 대형 고용주 고객에게는 보험만 파는 게 아니라 데이터 리포팅, 건강관리 프로그램, 네트워크 옵션까지 묶어 제안할 수 있어 전환 비용을 높일 수 있지요. 협상력은 단순히 가격을 깎는 힘이 아니라, 서비스의 설계를 바꾸는 힘이기도 합니다. “입원보다 외래를 유도하자”, “특정 검사 루트를 표준화하자” 같은 방향을 계약 구조로 녹여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협상력에도 유효기간이 있습니다. 첫째, 병원 시스템이 대형화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특정 지역에서 선택 가능한 대형 병원이 몇 곳뿐이라면, 보험사가 강하게 밀어붙일수록 오히려 가입자 불만이 커질 수 있습니다. “그 병원은 꼭 가야 하는데 왜 네트워크에서 빠졌나요?”라는 항의가 커지면, 결국 보험사는 조건을 양보하게 됩니다. 둘째, 가격만 누르면 공급자는 다른 곳에서 비용을 보전하려 합니다. 진료 코드의 복잡화, 부가 서비스 확대, 혹은 더 강한 청구 전략 같은 방식으로요. 그러면 협상력이 실제 비용 절감으로 이어지는 길이 막힙니다. 셋째, 규제는 규모 기반의 영향력 확대에 민감합니다. 통합 모델이 소비자에게 이득이라는 사회적 설득이 약해지는 순간, 투명성 요구와 반독점 압력이 동시에 강해질 수 있습니다. 제가 예전에 미국에서 지인 가족의 수술 일정을 도운 적이 있었는데, 보험 네트워크 안에서 가능한 병원을 찾는 과정이 생각보다 험난했습니다. “가격은 낮지만 집에서 두 시간 거리”인 곳과, “가까운데 비용이 더 드는” 곳 사이에서 가족들이 밤새 고민하더군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협상력으로 가격을 낮춰도, 환자 입장에서는 접근성과 신뢰가 더 큰 결정 요인이 될 때가 많습니다. UNH가 협상력의 덕을 보려면, 가격뿐 아니라 ‘선택의 체감’을 같이 설계해야 합니다. 네트워크가 촘촘해야 하고, 대기 시간이 줄어야 하며, 서비스 품질이 유지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규모는 고객을 묶는 밧줄이 아니라 고객을 떠나게 하는 매듭이 될 수 있습니다.

UNH의 ‘규모의 경제’는 결국 네 단어로 정리됩니다. 표준화, 실행, 신뢰, 그리고 균형입니다. 가입자 수와 사업 범위가 커질수록 데이터와 협상력의 엔진은 더 큰 힘을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힘은 운영이 단순하고 투명할 때만 앞으로 나아갑니다. 예외가 늘어나고 조직이 복잡해지면 규모는 도리어 마찰이 되고, 데이터는 숫자만 남으며, 협상력은 반발을 부릅니다. 2026년의 관점에서 중요한 질문은 “더 커질 수 있나”가 아니라 “커진 만큼 매끈하게 굴러가나”입니다. 투자나 산업 분석을 하실 때도 매출 성장만 보시기보다, 환자 경험과 공급자 관계, 규제 대응에서 ‘신뢰를 쌓는 방식’이 함께 개선되는지 꼭 살펴보시길 권합니다. 규모는 크기 자체가 아니라, 잘 다듬어진 시스템일 때 비로소 해자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