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2026년 1월 기준으로 S&P 글로벌(S&P Global, SPGI)이 왜 “값을 올려도 고객이 남는 구조”를 가졌는지 궁금한 분들을 위해 썼습니다. 신용평가, 지수, 금융 인프라라는 세 축은 겉보기엔 서로 다른 사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금융시장이라는 거대한 도시의 도로·지도·수도관처럼 서로 연결되어 돌아갑니다. 저는 이 구조를 ‘브랜드’ 같은 감각적 단어로 뭉뚱그리지 않고, 실제 구매자가 왜 떠나기 어렵고, 왜 비용을 협상하다가도 결국 수용하게 되는지 생활 언어로 풀어보려 합니다. 투자자 관점에선 매출이 얼마나 꾸준히 쌓일 수 있는지, 반대로 어떤 순간에 균열이 생길 수 있는지도 함께 감 잡는 것이 목표입니다.
신용평가: 시장의 ‘공용어’를 쥔 쪽이 단가를 만든다
신용평가의 힘은 정보의 양이 아니라 “합의된 언어”를 쥐고 있다는 데서 시작됩니다. 채권을 발행하거나 투자할 때, 사람들은 결국 위험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고 싶어 합니다. 그때 가장 자주 호출되는 것이 등급입니다. 등급이 있으면 설명이 짧아지고, 보고서가 단정해지고, 의사결정이 빨라집니다. 반대로 등급이 없으면 어떨까요. 투자자는 추가 자료를 요구하고, 내부 심사 문턱은 높아지고, 발행사는 같은 금액을 빌리면서도 더 높은 이자를 내야 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등급 비용은 아끼되 다른 비용이 늘어나는” 이상한 그림이 그려집니다. 제가 예전에 회사에서 채권 발행 관련 자료를 정리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담당자가 미팅에서 가장 민감해하던 건 수수료 자체가 아니라 “이번 등급이 바뀌면 투자자 설명을 어떻게 다시 짜야하느냐”였어요. 그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등급은 단순 서비스가 아니라 회의실에서 말을 줄여주는 도구라는 것을요. 말이 줄어든다는 건 곧 시간과 책임이 줄어든다는 뜻이고, 금융에서는 그게 꽤 비싼 가치로 환산됩니다. 또 한 가지는 책임의 분산입니다. 금융기관이나 기관투자자는 항상 “왜 이 상품을 샀나”를 설명해야 합니다. 그때 외부 신용평가가 있으면 판단 근거를 한 겹 덧댈 수 있습니다. 완전히 면책되지는 않더라도, 의사결정의 구조가 단단해지죠. 결국 구매자는 평가사가 마음에 안 드는 순간에도 쉽게 결별하지 못합니다. 헤어지려면, 내부에서 그 공백을 메울 보고 체계와 기준을 새로 만들어야 하니까요. 게다가 시장에서 널리 쓰이는 등급 체계는 일종의 규칙서처럼 기능합니다. 규칙서를 들고 있는 쪽은, 가격표를 조금 높여도 “그래도 필요하다”는 반응을 얻기 쉽습니다. 물론 영원히 안전한 건 아닙니다. 신뢰가 흔들리거나, 규제 환경이 바뀌거나, 시장이 새로운 방식의 위험 측정을 표준으로 채택하면 균열이 생길 수 있습니다. 다만 그 변화는 하루아침에 오지 않는 경우가 많고, 바로 그 ‘시간차’가 가격 결정력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줍니다.
지수: 숫자가 아니라 ‘약속’을 파는 사업, 그래서 바꾸기 어렵다
지수는 보기엔 단순합니다. 매일 발표되는 숫자 하나, 혹은 구성 종목 목록 정도로 느껴지죠. 하지만 지수가 진짜로 파는 것은 숫자가 아니라 약속입니다. “이 방식으로 시장을 측정하겠다”는 약속, 그리고 “이 약속을 기준으로 성과를 평가하겠다”는 합의입니다. 합의가 생기면 그다음은 관성입니다. 상품 설명서, 운용 가이드, 리밸런싱 규칙, 성과평가 리포트까지 한 줄 한 줄이 지수 이름에 붙습니다. 저는 예전에 지수 기반 상품을 검토하는 회의에 배석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 가장 큰 논쟁은 지수 사용료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지수를 바꾸면 고객이 ‘전략이 바뀌었다’고 오해하지 않겠냐”가 핵심이었어요. 같은 스타일의 포트폴리오라도, 기준이 바뀌면 과거 성과 그래프가 어색해지고, 비교표가 흔들립니다. 사람은 익숙한 숫자를 좋아하잖아요. 그 익숙함이 깨지는 순간, 설명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납니다. 결국 “조금 더 싸다”는 이유만으로 지수를 갈아타기 어렵습니다. 여기에 지수는 주변 생태계를 끌어당깁니다. 특정 지수를 추종하는 자금이 커질수록, 거래 편의가 좋아지고, 관련 리포트와 데이터가 풍부해지며, 마케팅 문구도 정교해집니다. 마치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에 상점이 늘어나는 것과 비슷합니다. 길이 붐비면 그 길은 더 편리해지고, 편리해지면 더 붐비죠. 이 선순환이 형성되면 지수 제공자는 ‘자릿세’를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됩니다. 또한 지수의 사용료는 단발이 아니라 반복이 되기 쉽습니다. 상품이 살아 있는 한, 그리고 그 이름으로 자금이 모이는 한, 계약은 이어집니다. 특히 ETF나 파생형 상품처럼 지수 이름 자체가 판매 포인트가 되는 구조라면, 지수는 브랜드이면서 부품이고, 동시에 계약서의 핵심 조항이 됩니다. 이런 다층 구조가 가격 협상에서 제공자에게 유리하게 작동합니다. 결국 지수 사업의 가격 결정력은 “지표의 정확도”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습관, 문서의 관성, 그리고 시장의 공동 약속이 한데 묶여 만들어지는 힘입니다.
인프라: 데이터가 ‘업무의 뼈대’가 되는 순간, 가격은 따라온다
금융 인프라에서 가격 결정력은 화려한 기능보다도 “얼마나 깊이 들어가 있느냐”에서 나옵니다. 처음엔 데이터 구독처럼 시작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그 데이터는 회사 내부의 대시보드, 리스크 산식, 자동 보고서, 권한 관리, API 호출 규칙에 촘촘히 엮입니다. 그러고 나면 공급자를 바꾸는 일은 단순히 계정을 해지하는 수준이 아닙니다. 시스템을 뜯어고치고, 숫자 정의를 다시 맞추고, 테스트 결과를 문서로 남기고, 감사 대응까지 준비해야 합니다. 내부 시스템에서 쓰는 시장 데이터 공급자를 바꿔보자는 이야기가 나와서, “가격을 줄일 수 있겠다”는 기대가 꽤 컸습니다. 그런데 막상 파일 포맷이 달라서 변환 로직을 새로 짜야했고, 동일 지표인데 계산 방식이 미묘하게 달라 보고서 숫자가 소수점 몇 단위로 흔들렸습니다. 그 작은 흔들림이 문제였습니다. 임원 보고 자리에서 “왜 지난달과 숫자가 다르죠?”라는 질문이 나오기 시작했거든요. 그때부터 절감액은 사라지고, 설명과 검증의 시간이 쌓였습니다. 결국 프로젝트는 속도를 잃었고, “그냥 기존 공급자를 유지하자”는 결론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그때 알았습니다. 인프라의 가격은 데이터가 아니라 ‘조직의 안정감’을 팔아서 만들어진다는 것을요. SPGI 같은 기업이 강한 이유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용평가 데이터, 기업 정보, 시장 지표, 분석 도구가 한 플랫폼에서 이어지면 사용자 입장에서는 편해집니다. 편해지는 만큼 의존도는 올라가고, 의존도가 올라갈수록 교체는 두려운 일이 됩니다. 특히 금융은 “장애가 곧 비용”인 산업이라, 가용성과 지원 체계가 믿을 만하다는 인식이 생기면 프리미엄을 지불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웁니다. 물론 여기에도 변수는 있습니다. 오픈 데이터 표준이 확산되거나, AI 기반 데이터 정합 기술이 대중화되거나, 경쟁사가 더 단순하고 저렴한 워크플로우를 제공하면 균열이 생길 수 있습니다. 다만 현실에서는 레거시와 규정, 그리고 ‘익숙함’이 생각보다 단단합니다. 그래서 인프라 영역의 가격 결정력은 한 번 쌓이면 오래가는 편이고, 사업자는 그 시간을 이용해 계약 구조를 더 탄탄하게 다듬어 갑니다.
SPGI의 가격 결정력은 결국 세 가지 감정에서 나옵니다. 첫째, 신용평가가 주는 “설명이 쉬워진다”는 안도감. 둘째, 지수가 만들어내는 “기준을 흔들고 싶지 않다”는 관성. 셋째, 인프라가 제공하는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돌아간다”는 신뢰입니다. 이 감정들은 숫자로 환산되기 어렵지만, 현장에서는 매년 예산을 통과시키는 힘이 됩니다. 다만 투자자라면 반대로 생각도 해보셔야 합니다. 표준이 바뀌는 순간, 혹은 시장이 새로운 언어를 채택하는 순간에 이런 힘이 약해질 수 있으니까요. 결국 관건은 ‘얼마나 올렸나’가 아니라, ‘왜 계속 필요해지는가’를 꾸준히 확인하는 데 있습니다.